<어라연> 여성의 힘

홈 > 오피니언

<어라연> 여성의 힘신혜영 (수필가, 석정여자중학교 교사)

영월신문 | c3740039@chol.com

승인 2006.12.15 11:37:36

우리나라 한 명숙 국무총리가 세계 여성 리더 7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계를 지배하는 여성들'이란 제목의 이 기사에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 대선 후보로 선출된 루아얄 의원,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밀러 자메이카 총리,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 등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주목받고 있는 여성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중 우리나라 한 명숙 총리가 함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뿌듯한 일이다.

이미 영국에서는 79년에 마거릿 대처가 총리에 올랐으니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여성 총리는 한참 뒤진 것이다. 어찌되었건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여성 총리가 나오고 여성의 사회 정치적 진출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는 것은 기쁘고 신나는 일이다.

나는 사회에 진출하여 활발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내 자신이 늘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쩔쩔매며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어쭙잖은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어서인지 이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성공한 여성은 참으로 멋지고 위대해 보여 끝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 가정과 직장 일을 동시에 잘 해내려면 남보다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을 꾸리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을 보면 부러움과 동시에 심지어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생활상을 낱낱이 알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추석 무렵 아프기 시작한 어머니가 급기야 입원을 하시고, 수술까지 받으시는 바람에 원주에 있는 친정에는 아버지 혼자 계시게 되었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서울에 있고 나만 영월에 있는 터라 서울 형제들이 어머니 간병을 맡게 되어 미안하던 차에 아버지는 선 뜻 내가 돌봐 드리겠다고 나섰다.

두 마리 토끼도 제대로 못 쫓던 나는 졸지에 세 마리 토끼를 쫓게 되었다. 가정일, 직장일, 그리고 친정아버지까지 돌봐드리게 된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모든 것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다. 직장 일은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고, 가정 일은 다른 때보다 잠을 줄이고 좀더 일찍 일어나 하면 되고, 아버지 돌봐드리는 일은 퇴근 후 바로 달려가 해드리면 늦어도 그날 밤 안으로 돌아 올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매일도 아니고 2일이나 3일에 한번씩이니 괜찮으리라 내 자신을 믿었다. 일주일은 정말 아주 신나게 했다. <어머니 수술만 잘 되시면 이게 무엇이 힘들랴>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두 번째 주, 세 번째 주도 그런대로 할만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가까워오고, 그 사이 어머니의 수술은 잘 되어 마음을 놓게 되면서 서서히 몸도 말을 안 듣고 마음도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가정일, 직장일, 아버지를 돌봐 드리는 일 중 무엇을 맨 뒤로 미루겠는가?

요즘 우리 주변에는 이 모든 일을 잘 해내고, 또 잘 해낸 여성들이 많다. 나는 힘 들 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들을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힘을 얻게 되고, 보이지 않는 큰 위안으로 피곤한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 어쩌면 직장일 가정일 외에 아버지를 돌봐 드리는 일은 또 내게 주어질 수 없는 적게나마 효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행복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분명 여성들은 강하다. 그리고 여성의 능력은 무한하고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섬세함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음은 확실하다. 그건 가정 일에만 매어 있던 여성들의 능력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 어떤 고통도 참아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 또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인내력과 저력의 소유자가 여성이 아닐까?

어느 유명한 여류 작곡가는 혼자 세 아이를 키우며 작곡을 하고 살아 온 삶을 고생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역경을 이겨 냈기 때문에 더 풍부한 악상을 얻었노라고 했다. 상황이 힘들수록 또 어려울수록 슬기롭게 극복하여 마침내 한 떨기 꽃으로 피워내는 한국의 여성들…….

오늘도 해가 지면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실 것이다. 또 어릴 때부터 엄마가 집에 있길 바라던 딸아이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가 문을 열어 주고 반겨주길 바랄 것이다. 직장에서도 열심히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야함은 물론이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한국의 여성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그 어느 곳에서도 당당히 남자들과 실력을 겨루어 앞서고, 능력을 발휘해 인정받아 성공한 자랑스러운 여성들이 많다. 그 여성들이 있기에 나는 든든한 마음으로 오늘도 세 마리 토끼를 겁도 없이 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