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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散策 <23> “물건을 갖고 놀면 뜻을 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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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玩人喪德, 玩物喪志 [출전: 상서尙書 주서周書ㆍ려오旅獒]
풀이 사람을 갖고 놀면 덕을 잃고, 물건을 갖고 놀면 뜻을 잃는다.
길잡이 그리스도교의 바이블에서처럼 유교 경전에도 정전과 위전에 해당하는 편들이 있다. 서경이란 이름으로 귀에 익은 상서의 려오 또한 그런 편 가운데 하나다. 상서는 진秦시황이 자행한 학술ㆍ언론ㆍ지식인 탄압의 일환인 분서갱유, 그리고 삼국시대를 통일한 진晉나라 때 흉노가 침공-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동진 시대의 매색이란 인물이 상서를 되찾았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매색이 되찾은 상서의 진위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이미 남송 때부터 나왔고 청대에 와서야 염약거에 의해 매색이 되찾은 상서는 위조된 것이라고 확증되었다(조선에서는 정약용이 검증 책임자로 나섰고 그 결과물은 유배지 강진에서 매씨서평이라는 책으로 저술되었다). 거짓이 밝혀지기까지 무려 1300여년이 걸린 셈이다. 거짓도 오랜 세월을 버티면 진리의 자격을 갖추는 것일까? 아니면 거짓 속에 이미 진리의 일단이 내재된 탓일까? 매색이 위조한 몇몇 편들은 삭제되지 않은 채 서경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08년 중국에서 서경의 새로운 출토 문헌이 나온 바 있는데 앞으로 또 어떤 진위 논란이 전개될지 궁금하다.
주周나라의 무왕이 마침내 상商나라(은殷나라)를 멸하고 중원 지역을 확장 통일하자 주변의 약소국들이 공물을 보내왔다(알아서 보내기도 했겠지만 위협에 못이겨 보냈을 수도 있다). 주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진기한 물품들이 속속 진상됐을 텐데 그중 서쪽에 있는 려족의 나라에서는 큰 개를 공물로 바쳐왔다. 영리한 사냥개에 혹해 정무를 그르칠까봐 아우 소공이 형 무왕에게 올려 바친 경계문이 바로 이 려오다.
깊이읽기 '사람을 갖고 놀면 덕을 잃는다'는 말에 굳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그것은 윤리학적 지식 이전의 직관과 당위일 것이다. '물건을 갖고 놀면 뜻을 잃는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완물의 대상도 선별과 절제의 기준을 마련하곤 했다. 반면 욕망의 긍정과 그것의 적극적인 추구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 근대인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낯설게 느껴진다. 근대는 진기한 물건을 보는 것을 견문을 넓힌다는 이름으로 권장되었다. 근대 초기 유럽에서 박람회博覽會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나 박물관博物館을 설립한 것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하겠다. 조선에서도 18세기 인물인 이덕무의 글에서는 기이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조심한 풍조가 발견된다. 하지만 요즈음 들어서는 '기괴한 것을 사냥한다'는 뜻의 엽기獵奇란 말이 자주 회자될 정도로 색다른 것에 대한 추구는 더 이상 금기나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없게 되었다. 격세지감을 말하기보다는 득실을 따져보는 태도가 지혜롭다 하겠다.
글ㆍ엄재억∥인문고전사랑방 "동인同人"(http://edongin.kr)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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