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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일의 밤샘[庚申守夜]엄재억(학생·성균관대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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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5.29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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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는 삼시충三尸蟲이라는 벌레가 기생하고 있대. 그 놈은 아무런 형체가 없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단다. 그런데 삼시충은 꼭 60일마다 사람이 잠든 틈을 타 하늘의 옥황상제를 뵈러 가서는 자기가 숨어 지내던 사람의 60일간 죄상을 낱낱이 일러바친대. 그러면 옥황상제가 죄질에 따라 벌을 내리는데 그 벌이란 당신 앞으로 그를 빨리 불러들이는 것, 다시 말해 수명을 단축시키는 거래. 원래 인간의 천수天壽는 100하고도 스무 살인데 60일을 단위로 죄질에 따라 적게는 3일에서 많게는 300일까지 명줄을 줄이는 심판이 내려진다는 거지. 그래서 고려인들은 60일마다 밤을 새면서 술을 마시고 놀았대. 고 얄미운 삼시충이란 녀석이 아예 상제님께 고자질을 못하도록 말야. 삼시충이 빠져나간다는 날은 60간지로 경신庚申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날 밤을 새는 일을 ‘경신수야庚申守夜’라고 한대.

“고려사”도 이 경신수야를 언급하지. 1265년 원종 6년에 태자 심(諶, 후의 충렬왕)이 주최한 궁중 연회에 관한 기록이 그것인데 경신일이면 대신들과 어울려 밤새 술을 마셨나봐. 왕조의 바통이 조선으로 넘어간 뒤에도 이 미풍양속(?)은 이어졌던 것 같아. “성종실록”을 보면 사헌부의 언관들이 이를 금하자고 임금님께 건의를 하지만 성종은 시원찮게 반응을 했다는군. 그러다가 1759년에 가서야 등불을 밝히고 놀기보다 밤새 근신하라는 타협점(?)을 영조가 제시했대.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 말을 들었겠어? 음주가무로 밤샘을 하는 건 몰라도 엄숙하게 몸 조심?마음 단속하라는데…. 결국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전통은 이때부터 자취를 감추게 된 셈이지. 그렇지만 요새도 경신일에 밤을 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들었어. 자기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수도 내지 치유의 차원에서 말이야.

경신수야란 원래 도교(道敎)에서 유래했대. 스위스 태생의 한국학자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1935~ )가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에서 다룬 주제의 맥락처럼, 경신수야의 맥이 끊어진 것도 조선의 유교화 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거겠지. 재미있는 건 도교에서 인간의 천수를 120년으로 봤다는 거야. 현대 의학에서도 척추 동물의 한계 수명은 ‘뇌의 발육 기간×5’로 잡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따라서 25세까지 뇌가 성장하는 인간의 경우, 한계 수명은 125살이라는 거지. 종교와 과학이 5년 차이로 각각 120년과 125년을 천수로 잡은 건 우연한 근사치일까? 도교에서는 그저 ‘통밥’으로 한계 수명을 저렇게 산출했을까, 아니면 희망 사항의 반영일까? 조셉 니덤(Joseph Nitham, 1900~1995)의 면밀한 통찰-근대 이전 중국의 과학 발전의 이면에는 항상 도교가 있었다는-을 참고해 본다면 아무래도 나름의 근거가 있을 법도 할 거야.

5월 31일이 바로 그 경신일이네. 60일마다 돌아오니까 7월 30일, 9월 28도 그날이 되는데 난 앞으로 이 경신수야의 전통을 개인적으로 부활시켜 볼까 해. 장수 욕심 때문도, 옛 풍속을 되살리겠다는 취지도 아니고 단지 자신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자는 의미에서지. 책을 보거나 맘에 맞는 사람들과 흉금을 털어놓고 한 잔 하거나 뭔가 뜻 깊은 일을 하면서 말야. 앞으로 밤새 술 퍼 마실 일 있으면 경신일로 미뤄 둬. 그 때 연락해서 한 잔 하자고. ^^~

*蛇足: 31일은 마침 지방 선거일이기도 하니까 저 말고도 전국적으로 밤새는 분들 많으시겠군요. 당선되면 기뻐서, 낙선하면 억장이 무너져서 뜬 눈으로 지샐 테니까요. 그날만큼은 모두 근신의 의미로 철야하시죠. 축배를 든 분은 실천으로 보답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고배를 든 분은 준엄한 자기 반성 겸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 기도라도 올리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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