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연> 배 아프게 하는 사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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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 배 아프게 하는 사촌들이윤정 주부

영월신문 | c3740039@chol.com

승인 2008.04.04 13:35:05

이 속담이 원래는 나쁜 뜻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라도 아파서 거름이라도 보태야겠다는 의미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찌어찌 변질되어 시기나 질투로 변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속물적인 내 소견으로는 인간의 심리상 후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 한쪽 다른 문화와의 배양을 통해 태어난 멀지도, 그렇다고 친형제처럼 가깝지도 않은 사촌이라는 관계의 거리가 만들어 낸 색다른 감정의 출렁임일 것이다.

나와 먼 외국의 일이거나 같은 동네라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출세를 하고 잘나간다고 해도 뱃속에서는 별 반응이 없다. 그렇게 점잖은 배가 가까운 친구나 이웃에게는 편안해지지 않는다. 그것으로 봐서 비교가 되거나 경쟁의식을 갖는 사이에서 배 아픔의 화학 반응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나이에 따라 아픈 이유도 다르다. 돈을 잘 벌거나, 출세했거나, 자식이 일류대학을 갔을 때 표시 안 나게 우리는 배 아픔을 경험한다.

인격과 교양으로도 진정되지 않는 배 아픔은 시간이 지나야 수그러든다.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솔직하고 원초적인 감정이 아닐까한다. 인류역사상 처음 살인사건이라는 가인과 아벨도 질투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볼 때 배가 아프다는 것은 깊고도 오래된 지병이다. 가인의 후예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배 아픔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사방 잘난 사람 천지 속에서 사는 두루두루 못난 내게는 배 아픔이 삶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잘 견디는 건 나잇값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귀결되어지는, 지엄한 죽음의 공정함을 깨달음으로 결국 마지막은 같다는 것에 억지로 꿰어 위안을 얻는 교활함을 배워서이다.

가끔 배 아픔에도 예외가 있다. 엄청난 부자고 출세를 했더라도 알게 모르게 좋은 일을 많이 하거나 겸손한 사람에게는 배가 아닌 가슴이 먼저 따스한 신호를 보낸다. ‘그래, 저런 사람이 많아야지’ 하며 부러워할 뿐이다.

전쟁나면 솔선수범해서 출전하는 영국 귀족들의 수준 높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문화를 부러워하며 우리에겐 그런 역할모델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는 유명한 경주 최 부자가 있음을 알았다. 최 부자 가문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만석이상은 모으지 말라는 것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 그리고 보릿고개 때는 쌀밥을 먹지 말라는 것인데 오래도록 그 원칙을 지켰다고 한다. 그런 부자가 이웃에 있다면 배가 아프기는커녕 오래도록 잘되라고 누구라도 기원해주었을 건 뻔한 일이다.

최근에 그들만의 리그라고 조롱받은 고소영, 강부자 내각인선을 보며 우리는 모두 분통터져했다. 또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졌으면서 더 많이 가지려고 불법으로 돈을 빼돌린 재벌에 분노했고, 이 사회에 절망했다. 다시 한번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합리화했다. 아니, 돈과 권력 앞에 무기력한 우리사회를 보며 그들을 준거로 삼아 그렇게 되기를 꿈꾼다. 우리는 축하와 질시, 밥과 도덕의 어색한 공존 속에서 필요에 따라 손을 들어주며 그렇게 살 것이다. 그리고 공부는 많이 했지만 생각할줄 모르고, 재물은 많이 모으지만 나눌 줄 모르는, 잘난 사람, 잘난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배가 아플 것이다.

소비가 미덕이고 자랑이 넘치는, 화려하고 현란한 세상이 나는 어지럽다. 아프게도 하고 아프기도 하면서 가학과 피학의 경계를 오가며 그렇게 살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내 자식이 살 세상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 세상을 생각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사회정의와 공동선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다음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넘겨줄지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음이 큰 죄라는 걸 깨닫고 제발 생각이라는 걸 하는 사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사촌이 땅을 사면 거름을 주기 위해 배 아픈 세상이 다시는 오지 않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