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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문화제 백일장 장원 작품<일반부, 고등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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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단종문화제 일반 및 학생백일장 장원작
<일반 시부문>
유년의 마당
전명희 영월읍 영흥15리
쇠죽 끓이는 소깝 연기 너머
붉게 걸린 저녁
날이 가물어서 큰일이여
아부지는 멍석을 깔으셨지
홍두깨 미는 어무이 곁에서
하매하매 기다리던 국시 꼬랭이
설레임은 아궁이 속에서
부풀어 오르고
장 단지 앞 봉숭아
제 먼저 터져 버렸지
탱자나무 울타리 가득
강냉이 내음 넘실대고
자분자분 내려앉은 어둠속
멍석 끝자락 적셔오는 박꽃향기
옛날옛날 소금 장수가
아스라이 별똥별 하나 둘 셋
소원 이루어져라
소원 이루어져라.
<고등부 시>
고목
오선정 석정여고 2년
세월의 흔적
살아온 날들을 다 기억하는 걸까
따뜻함 묻어나는 그 굵은 허리와
그 속에 살아 숨쉬는 너의 정(情)
네게 묻고자면
넌 고통을 짓누르고
내게 보여주겠지
너의 삶을, 그리고 흔적을
너도 어릴 적이 있었을거야
하늘의 온기를 받고
땅의 손길을 받아
어둠의 공간을 통과하여
빛을 발하고
시작과 끝을
갈망하는 길목에서
넌 그렇게 굽고굽은 생(生)의 길을
네 품속에 새기며 살아왔겠지
그리고 살아가겠지
지금의 우리처럼
네가 그랬듯
그래왔듯
너와 또 다른 우리도 살아가겠지
흔적을 품고, 또 기억하며
<고등부 산문>
고목
엄보람 석정여고 1년
“어허, 또 그냥 들어가려고?”
“아빠도 참, 한번만 봐주세요.”
교과서와 한바탕 씨름을 끝내고 돌아온 반가운 집. 하지만 또 한번의 전쟁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릴적부터 받아온 잠들기 전 뽀뽀를 계속 받으려는 아빠와 이제는 징그러워서 싫다며 버티는 저와의 일명 ‘뽀뽀전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옛날이었다면 벌써 시집을 갔을 다 큰 딸에게 끈질기게 볼을 내미는 아빠의 고집스런 면에는 우리 가족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든지 오래입니다. TV는 오로지 뉴스만 보고 꺼버리며, 신숙주가 싫어 숙주나물도 안 드실 정도이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러던 중 아빠와의 길고 긴 뽀뽀전쟁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얼마 전 영월에서 개최된 삼일절 건강마라톤대회를 걸고 내기를 한 것입니다. 회사 직원 4명과 함께 참가하는 이번 마라톤에서 만일 아빠가 가장 좋은 성적을 내면 군말 않고 뽀뽀해드리고, 그렇지 못하면 아빠가 깨끗이 포기하기로 말입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는 내기였습니다. 50을 바라보는 아빠와는 달리 직원들은 모두 팔팔한 30대 이기 때문입니다. 이 불리한 내기에 의외로 순순히 응한 아빠는 꼭 직원들을 제치리라는 의지로 활활 불탔습니다. 그런 아빠를 보며 무리하다 쓰러지시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이제라도 내기를 취소하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타고난 성격과 딸과의 내기, 피나는 연습으로 삼박자를 모두 모두 갖춘 아바는 정말 뽀뽀 한 번에 목숨을 건 것이 분명했습니다. 마침 내 찾아 온 결전의 날.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한 제게 다시 한번 다짐을 받고서야 아빠는 파이팅을 외치고 집을 나섰습니다. 배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 온 저는 결과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너무 무리하시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젠 더 이상 뽀뽀타령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홀가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딸이 괘씸해서였을까요. 놀랍게도 아빠는 젊디젊은 직원 분들을 모두 제치고 일등을 하고야 만 것입니다. 게다가 50등 안에 들을 만큼 우수한 결과이니 의심을 할 여지없이 아빠의 완승이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저는 내기를 한 것도 깜빡잊고 신이 나서 방방 뛰고야 말았습니다.
아빠는 고목과 꼭 닮았습니다. 한해 두해 나이가 들어 푸른 잎사귀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생기있던 가지들이 닳아서 사라지고 있는 우리 아빠. 요새 들어 부쩍 나이를 먹는다며 한숨을 내쉬는 아빠의 모습이 싫어 화를 내면서도 마음이 쓰렸습니다. 아빠가 약해질까 무서웠는데 모두 괜한 걱정이라는 것을 이번 마라톤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겉모양은 그 빛이 바랬어도 속에 감추어진 뿌리는 아직 튼튼한 아빠는 고목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해를 하지 못했던 별난 고집도 아빠의 굳은 의지와 신념에서 생겨났던 것입니다. 주름살이 늘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도 그 의지력은 언제나 아빠를 지탱해 줄 것을 믿습니다. 흙속에 단단히 뿌리내린 고목처럼 말입니다.
너무도 멋진 고집쟁이 아빠가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굳은 의지를 가는 일이 시급해진 요즘, 저는 아빠를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별난 고집까지 닮아버려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반쯤은 그런 모습까지 가지고 태어난 저는 아빠의 딸래미 고목이니까요. 삼일절 마라톤이 있은 후, 저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온 날이라도 절대 잊지 않고 아빠 볼에 뽀뽀를 해드리곤 합니다. 고목 아빠를 둔 덕에 아마도 시집가기 전까지는 매일 저녁 이 일이 되풀이 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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