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나고 보름 정도 됐다. 그럼에도 추석의 풍경과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지난 추석은 예전의 추석과 달랐기 때문인 것 같다. 이유는 개인적인 상황의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계절은 여름의 한 가운데를 지나 가을의 중심으로 가고 있다. 맑은 하늘과 색깔 고운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나는 지금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무궁화 열차에 있다. 학교 강의를 마치고 고향 영월로 가는 길이다. 도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기차를 이용하는 기회가 줄었다. 청년기에 이용하던 청량리역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세월의 흐름을 이곳 청량리역에서도 느낀다. 기차여행에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몇 년 전의 여름이 생각났다. 몸과 마음이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건강이 여의치 않은 어머니를 자주 뵙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귀향을 준비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 일주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옛말을 실감했다. 아버지의 49재에 친구 네 분이 쉼터에 오셨다. 49재 의식에 가족들과 함께 하셨다. 그 느낌이 남 달랐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아버지의 인생 팔십은 멋진 소풍이고 여행이셨다. 어머니 또한 지난해 추석 무렵에 세상 여행을 마치셨다. 일주기가 추석 삼일 전 이었다. 어머니의 인생 팔십은 몸과 마음 모두가 힘이 들었다. 마지막 십년은 벌목된 산처럼 황량했다. 치매로 인한 투병 때문이다. 요즈음 100세 인생을 노래한다. 건강하지 않은 100세는 마냥 축복이지 않다는 것을 체험했다. 계절이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궁극의 질문이다. 무엇을 위한 삶이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욕구 충족을 통한 행복추구가 삶의 일반적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행복은 '욕망'을 분모로, '가진 것'을 분자로 놓는 것과 같다고 말 한다.” 이 견해에 동의한다면 가진 것을 늘릴 수 없으면 욕망을 줄여야 한다. 사람들은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가진 것을 늘리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21세기에 들어서 사람들은 느끼고 있는 듯하다. 사람의 욕망을 제로(0)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욕망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님을 여의고 나이가 들고, 고아 아닌 고아인 지금에서야 철이 드는 느낌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행복한 것이고, 충실하지 않으면 불행했던 과거가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적 가족사에서 보면 세대(世代)가 바뀌고 또한 새 생명이 태어났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한 여름에 출간 된 도종환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를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읽었다. 이러한 구절이 있다.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나는 생각한다. 시인의 기준에서 보면 난, 몇 시쯤 될까? 오후 한 시에서 두 시 사이?, 씨익 웃는다. 시인은 우리가 사는 생애를 ‘막차’라는 시(詩)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오늘도 막차처럼 돌아온다. 오늘도 많이 덜컹거렸다. 급제동을 걸어 충돌을 피한 골목도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넘어온 시간도 있었다. 그 하루치의 아슬아슬함 위로 초가을의 바람이 분다.” 이 시를 읽으면서 청년시절 막차를 일부러 놓아주었던 기억에 또 미소가 번진다.
   이제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말 그대로 귀향이다. 고향은 노인들이 전체인구의 25%에 달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이다. 나도 노인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곱게 물든 단풍이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것을 요즈음 느낀다. 어르신들이 행복한 고향이었으면 한다. 고향에서 곱게 물든 단풍처럼 인생 2막을 마쳤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