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2007, 아임 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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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2007, 아임 스물이 슬 석정여고 3년

영월신문 | c3740039@chol.com

승인 2007.01.19 11:29:48

수능을 끝내고 나자 모든 게 다 허탈해졌다. 몇몇 친구는 울었고, 몇몇 친구는 웃었다. 나는, 그냥 멍해졌다. 끝인가, 아니면- 시작인가?

얼마간은 어영부영 보냈다. 한결 여유로워진 표정을 지으며 영화도 보았고 잠도 실컷 잤다. 공부한답시고 읽지 못했던 책도 읽었다. 친구 하나는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했고, 또 다른 친구는 한문 시험 준비를 했다. 나는, 그냥 책이나 읽었다. 좀 더 쉴 필요가 있어. 스스로를 설득했다. ‘남들보다 열심히는 아니었어도 그래도 고삼이랍시고 고생 좀 했었으니까, 게다가 그게 하루 이틀 일주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랬으니까 좀 쉬어도 돼.’ 랄까.

이따위 생각이나 가지고 하루를 보내려니 뭘 해도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지금 안 되면 이따가 하고 이따가도 귀찮으면 내일하고 내일도 정 싫으면 모레하면 되잖아. 그렇게 12월을 보냈고 2006년을 보냈다. 나는 내가 수능을 끝내고 좀 여유로워지면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미뤄두었던 이러저러한 공부도 하고 그래서 시험도 보고. 수능 전보다야 좀 느슨해지겠지만 그래도 마냥 잠을 자고 마냥 컴퓨터를 하고 마냥 책을 보며 침대 위를 뒹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이 생각대로만 살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나는 더더욱.

다른 해보다 길고 길게만 느꼈던 2006년을 벗어버린 2007년의 나는 스물. 누구는 이름만 들어도 떨린다던 문제의 그 스물이다. 새파랗게 어릴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핫핑크의 여자다운 빛으로 반짝반짝할 나이도 아닌 스물. 스스로는 조금 징그럽다고 여겼다. 벌써 스무살. 십대엔 뭔가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것 같은데, 아직 뭔가 잔뜩 이루지도 못한 십대의 나를 벗어버리고 어느새 스물.

그래서 조금 의기소침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십대의 채 영글지 못한 열매들이 바닥에 떨어져 스물스물 썩어가는 걸 보면서, 이십대의 나도 뭔가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다가오는 스물의 나에게 제대로 손 한번 흔들어 줄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좀 더 무기력해졌던 건지도 모른다. 제대로 끝맺지 못할 일에 쫓기듯 손을 대고 허겁지겁 재단을 하고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재봉을 하고 그러고도 시간과 핑계로 끝단추까지 잠그지 못할까봐 아예 손을 대지 않으려 했던 건지도.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이제사 고작 스물. 고작. 그렇게 많이 산 것 같았는데 고작해야 스물. 아마 나는 살아온 것보다 많은 날을 살 것이다. 그리고 스물 이후의 나는 열아홉을 살아오면서 벌려놓은 일보다 더 많은 일을 벌일 것이고 물론 그 중엔 흡족할만치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일도 있을 것이다. 이러이러한 공부를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저런 공부를 하게 될지도 모르고 보려고 했던 시험 두 개 중 하나를 겨우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아무것도 안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인간이란 앞날이 두렵다고 제자리걸음을 걸으며 살 수 있는 동물은 아니니까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내가 맺은 과일 중 몇 개는 달고 맛있겠지만 몇 개는 채 자라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져 썩어버릴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떨어진 나뭇잎이 썩어 거름이 되듯, 떨어진 내 실패작들은 앞으로의 인생을 사는데 교훈이 되고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스물이다. 고작, 스물. 그러므로 나는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