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한치 마방터의 유래<영월의 이야기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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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한치 마방터의 유래<영월의 이야기32>최명환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영월신문 | c3740039@chol.com

승인 2006.11.24 14:34:55

영월읍 방절리에서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을 건너, 굴곡과 각한치로 갈라지는 철길 아래 부분을 ‘마방터’라고 부른다. 각한치에 마굿간을 갖추어 놓고 술과 음식을 팔던 ‘마방집’이 있었다고 해서 불리어진 이름이다.

옛날 각한치를 넘어 다니며 소를 팔아 돈을 모은 사람 중에, 아내를 먼저 잃고 외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소장수가 한 사람 있었다. 소장수는 소중하게 키운 외아들을 장가를 보내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외아들은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소장수에게는 너무 허망하고 슬픈 일이었다. 소장수를 그만 두고, 돗자리 만드는 일로 소일 삼아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와 함께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루는 이웃집 잔치에 갔던 며느리가 막걸리와 부침을 가지고 와서는 “아버님! 출출하실 텐데, 시원한 약주에 부침을 들어 보세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며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장수는 “젊디젊은 것이 무슨 죄가 있어서 청상이 되어 이 고생을 할까. 내가 몹쓸 사람이지 나 혼자 사는 게 힘들어도 하루 빨리 개가를 시켜야 할 텐데....”라면서 걱정을 하였다.

어느 날 며느리가 빨래거리를 들고 냇가로 나간 뒤 막걸리를 사기그릇에 가득 부은 후 막 마시려고 하는데, 갑자기 대청마루 위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면서 막걸리 잔에다 똥을 싸고 가는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더러운 술잔을 흔들어서 땅에다 쏟아 버렸다. 그 때 봉당에서 놀던 개가 그 막걸리를 핥아먹고는 잠시 후 비틀거리더니 죽어 버렸다. 깜짝 놀란 시아버지가 일의 앞뒤를 헤아려 보니 그 막걸리 주전자에는 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괘씸하여 관가에 알리려다가 “평소에 그렇게도 착하던 며느리가 얼마나 혼자 살기 힘들었으면 이다지도 끔찍한 일을 생각을 하였겠는가!”라며 시름에 잠겼다.

이 때 대문을 열고 살그머니 들어오던 며느리는 봉당에 죽어있는 개와 묵묵히 앉아 있는 시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멍하니 앉아 있는 시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님 이 몹쓸 것을 죽여주십시오. 감히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아버님께 험한 일을 저지르려 한 이년을 죽여주십시오.”라고 하면서 목을 놓아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며느리의 한 맺힌 울음소리를 듣던 시아버지는 “아가야, 내가 진작 너를 친정으로 돌려보내 개가를 시키려고 했으나, 지극한 정성으로 이 늙은 것을 공경하는 너를 차마 보낼 수가 없었단다. 모든 것이 이 늙은이의 잘못이니 네가 이 시아비를 용서하려무나.”하면서 오히려 며느리를 달래주었다.

그 후 시아버지는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을 정리하여 며느리를 개가시키면서, 먹고 살 집과 얼마간의 농토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 후 며느리의 간곡한 호소를 뒤로 하고는 괴나리봇짐 하나만을 들고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전국의 이름난 명승지를 몇 달 돌아다니다 보니, 얼마 되지 않던 노자가 금방 바닥이 나고 말았다. 시아버지는 할 수 없이 며느리가 사는 집을 찾아갔지만, 차마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젊어서 소장사를 다니던 강원도 영월 땅이나 가보자는 각오로 영월 연당을 지난 험한 각한치를 올랐다. 그러나 너무 연로하여 각한치를 오르다가 그만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렴풋이 눈을 뜨니 웬 젊은이가 옆에서 극진히 간호를 하고 있었다. “젊은이 고맙네. 이 늙은이를 구해 준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네. 가진 것이 없으니, 마음속으로나마 훌륭한 젊은이가 되기를 빌어 주겠네.”라는 늙은 소장수의 말에 젊은이는 걱정 말고 몸이나 완쾌하라며 위로를 하는 것이었다.

이 때 방문이 열리고 한 노파가 들어오더니, 의식을 차린 소장수 영감을 보고는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었다. “영감님, 영감님이 젊었을 때 이 각한치 고개를 넘어 다니며 소장사를 하셨지요? 그 당시에 이곳 마방집에서 밥을 해 주는 노처녀를 소여물을 쌓아 놓은 마굿간에서 겁탈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 노처녀가 바로 이 몸이고, 그 때 낳은 자식이 바로 이 아이입니다. 당신이 언젠가는 이곳을 지나갈 줄 믿고, 평생을 이 마방집을 지키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파의 말을 들은 소장수 영감은 꿈같은 현실에 넋이 빠졌다가 이윽고 부인과 아들의 손을 꼭 잡은 해 눈물만 줄줄 흘렸다. 소장수 영감은 새로 찾은 부인과 아들의 청을 받아들여 각한치의 마방집에 눌러 살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가 거지꼴을 한 채 자기가 사는 마을을 지나쳐 갔다는 소문을 들은 며느리가, 남편과 함께 수소문 끝에 시아버지를 찾아 각한치 고개까지 와서는 노후에 편안히 살만큼의 토지를 마련해 주고 돌아갔다. 그 후 소장수는 각한치의 마방집에서 편안히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