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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통일문예작품공모전 수필부문 장원작>통일과 함께하는 할머니의 사랑 황경숙 북면 문곡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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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9.29  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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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땀방울을 닦으면서 금새 9월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여드름 한창이던 어릴 적 소녀의 꿈이 보이곤 한다. 한 때 가을은 내게 슬픔과 그리움으로 긴 한숨을 내뱉게 했다. 힘들어도 맑게 웃어야 하기에 내 마음을 빼꼼이 문 열어 힘든 만큼 웃음도 많은 가을의 쪽빛 하늘에 보여주곤 했다.

가을의 햇살에 익어가는 들녘의 알곡들처럼 홀로 계신 외할머니를 잠시나마 잊고 행복에 젖어있었다. 할머니의 삶도 그러하듯이 가을 하늘 닮은 할머니의 가슴은 늘 강제로 징용되어 가신 할아버지와의 이별에 대한 그리움과 다가올 희망의 빛을 함께 노래하고 있었다.

동란때 외할아버지께서 행방불명이 되시자 신 새벽 정화수 떠놓고 할머니께서는 무사귀환을 빌고 또 비셨지만 할머니의 기다림은 끝내 생이별이 되고 말았다. 지루한 장마철이 되면 눅눅하게 젖어드는 방바닥처럼 할머니의 가슴은 마른 날보다 젖은 날이 더 많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드러내 놓지 못한 채 어린 딸을 키우고 사신 청상의 할머니의 가슴에 새까맣게 타버린 재가 쌓이다 못해 기다림의 눈물은 하dis 슬픔으로 흘러 내렸을 것이다. 천진스럽기만한 어린아이였던 내가 이제 불혹의 나이 사십이 되어서야 할머니의 삶에 하나씩 눈을 뜨면서 30여년도 더된 오래 전의 옛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채 가물거린다.

지금은 팔순이 훌쩍 넘은 할머니의 허리는 휘어진 활처럼 구부러져 제대로 걸을 수도 없고 노환으로 인해 기억력은 금방이라고 꺼질 듯한 등잔불처럼 가물거리기까지 한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외갓집을 가면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던 외할머니의 눈에는 늘 청포도알 같은 눈물이 달려 있었다.

홀로 외로움에 지친 할머니의 반가운 마음은 항상 눈물로 시작되곤 하였다. 빨갛게 익은 석류알처럼 상처 깊은 가슴이 터질 때면, 그 순간만큼은 할머니의 가슴 또한 숨차게 열렸으리라. 9월의 하늘은 할머니에겐 희망의 빛이었다. 언젠가는 당신의 생신상 옆에 함께할 할아버지를 기다렸고, 앞마당 가에 붉게 물 들은 복스럽게 핀 봉숭아에 열손가락을 내밀어 꽃 봉우리에 얹으시곤 하셨다. 그리고 옆에 서있는 내게
“경숙아, 꽃이 참 예쁘구나.”
“그렇죠. 할머니, 제가 손톱에 물들여 들일까요?”
“아니다. 머지않아 한줌의 흙으로 돌아 갈 텐데.....한 땐 할미도 꽃처럼 고운시절이 있었단다.” 하시며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글썽이셨다. 순간 할머니의 말에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상처난 할머니의 삶은 이제는 세월의 시련 속에서 눈이 있어도 잘 볼 수 없고, 그 밝던 귀가 이젠 보청기를 껴야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어두운 귀가 되었다.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들도 그 옛날의 기다림도, 아니 오래도록 소망하고 꿈꾸던 만남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이젠 다 내려놓으신 채로 할머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잊어버리는 것만 같아 난 더욱 서글퍼지기만 한다.

어느 집에든 벽 한 쪽에 걸려있는 흔한 가족사진 한 장 없이 본의 아니게 이산가족이 되어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자란 나의 어머니는 어느덧 회갑을 맞이하셨다. 남편에 대한 추억 하나 없이 50여년을 넘게 할머니와 함께 온갖 고통을 겪으며 살았어도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움조차도 갖지 않았던 어머닌 그리움이란 기다림을 숙명이라 여기며 살았으리라........아니 우리가족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피와 살을 나눈 부모, 형제들과의 이별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하루빨리 이 땅의 통일의 꽃이 피기를 바라고, 또한 통일로 인해 우리나라가 겪을 고통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길 기원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세월은 50년을 넘게 이끼가 낀 바위처럼 차곡차곡 무정하게 흐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되는 통일에 대한 믿음만큼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통일한국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기 위해 남.북한 모두가 오늘도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통일이 소중한 것처럼 나의 할머니께서는 보물처럼 여기는 특별한 비녀가 하나 있었다. 닳고 닳은 비녀는 금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요, 은으로 만든 것도 아닌 그저 내가 보기엔 평범하기만 한 비녀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오래되기도 했지만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할머니는 항상 길었던 머리에 쪽을 쪄 비녀를 꽂았던 그 머리를 짧은 커트 머리로 바꾸셨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할머니께선 그런 비녀를 버리지 못하고 꼭꼭 신줏단지 모시듯 할머니의 문갑 깊숙이 넣어두셨다. 철없는 난 할머니께 철없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할머니, 할머니께선 이젠 비녀를 꽂지 않으셔도 되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갖고 계시는 거예요?”

나는 할머니로부터 가슴 찡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비녀는 외할아버지와 혼인할 때 예물로 받은 비녀라고 하셨다. 할머니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었던 것이다. 어릴 적에 외할아버지는 왜 안계시냐고 물었을 때 외할머니와 어머닌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고 하였던 말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두 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철없던 그 순간이 아련하여 가슴이 시릴 만큼 아파온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외할머니의 마음에도 이제는 따사로운 햇빛이 드는 평온한 길이 생겨 조금이나마 편안히 걸으실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본 글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었던게 생각난다. 아흔을 넘긴 아버지께선 산에 오를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아들은 어떻게 모시고 갈까 고민하던 중에 지게에 의자를 만들어 여행을 시켜드렸다는 가슴 뿌듯한 효자 이야기였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거동조차 힘든 할머니를 생각하니 안타깝고, 바쁜 내 생활만 탓하며 할머니의 마음을 뒤늦게 깨달은 내 자신이 더욱 부끄럽기만 했었다.

더러는 ‘통일’ 이라는 과제를 풀리지 않는 숙제라 여기며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포기하고 마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들이 남.북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좀더 깊은 관심과 노력이 더해진다면 반드시 희망과 화해의 빛은 보여지리라 믿는다. 또한 우리들의 마음을 바꾼다고 해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하루 빨리 한반도 전체의 통일에 대한 기다림과 이별이 더 이상 없도록 아주 체계적이고도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나태하기 쉬운 요즘 우리 일상 속에서 맑게 세수 하듯 분단의 고통과 통일이라는 기쁨의 모양이 인연의 한 가닥에서 나왔다면 반세기를 넘는 이산가족의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 또한 우리들 모두의 품에 안아 사랑해야만 하지 않을는지......

기다림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넓고 깊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어는 누구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살아온 할머니의 모습은 네게 무언의 가르침이 되었다. 또한 통일은 나만의 고민이 아닌 미래의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나아갈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우리국민 모두의 당면과제로써 엄숙하게 받아들여져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천년을 푸르게 높이 서 있는 굳은 소나무처럼 우리 또한 뿌리 깊은 한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남북한이 하나 되는 통일의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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