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연> 부자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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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 부자아빠이윤정 주부

영월신문 | c3740039@chol.com

승인 2008.05.16 17:00:13

자식이 아주 많은 어떤 집안이 있다. 잘 사는 자식, 가난한 자식, 똑똑한 자식, 모자란 자식, 자식들의 삶도 각양각색이다. 가장인 아빠는 잘 사는 아들에게 가난한 아들을 위해 조금만 나누어주라고 했다. 잘 사는 아들은 화가 났다. 가장이 무능하다고, 가난이 아빠 탓이라고 이런저런 말들이 떠돌았다. 뭔지 모르지만 가난한 아들들도 덩달아 화가 났다. 마침 아빠를 바꿀 기회가 되어 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는 아빠를 새로 뽑았다. 그런데 이 부자아빠는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도 모두 도덕이 밥 먹여 주느냐고 능력 있으면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박수치며 맞이했다.

자식들은 이미 욕심만 많아져서 부동산 투기를 위해 주소를 옮기거나 세금을 덜 내는 일도 당연하게 여기고 오히려 능력이라고 믿게 되었다. 얼른 부자가 되어 명품을 사고, 해외로 나들이 갈 꿈에 부풀었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부자만 되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많은 아들들이 부자아빠가 하는 일을 의심하게 되었고 앞날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가 그 자식들이다.

몇 년 전 카드회사 광고 카피인 ‘부자 되세요’가 히트를 치면서 최고의 덕담이 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 붐을 타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10억 만들기’ 등 재테크 관련 책들이 상위 베스트셀러가 되고 온 국민이 부자가 되기 위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특별히 쪼들리거나 궁핍하지 않은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커져만 가는 욕망 때문에 우리는 늘 쫓기고, 배고프고,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자녀교육의 최고 지향점도 부자고, 모든 직업과 꿈도 부자가 되는 수단으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꾼을 뽑을 때도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이 내 통장을 불려줄 사람에게 한 표를 찍고,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조차도 장래의 꿈이 뭐냐고 하면 돈 많이 버는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마음이니, 정신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보다 경제라는 말을 더 빨리 배우는 영악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가 된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떻게 살지에 대해선 별로 얘기하는 걸 못 보았다.

우리는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그것이 진정 귀한 것임을 깨닫는다. 두 발로 걸을 수 없을 때, 밥을 제대로 넘길 수 없을 때, 그제야 걷고 밥 한술 맛있게 먹는 평범한 일상들이, 큰 집과 돈보다 소중하고 귀하다는 걸 깨닫는다. 하나님은 정말 귀하고 꼭 필요한 것들은 공짜로 쓰게 하셨는데 그것조차 망가뜨리고 나중에 후회할까 걱정이다. 내 형편이 한심하고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 만일 내 가족이 큰 병이 걸렸다면, 하고 가정해보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평온한 일상이 너무 감사하게 다가올 것이다.

사람을 뽑을 때 능력과 도덕성, 어떤 것을 우선 하겠느냐고 했을 때 모두 흠이 있더라도 능력 있는 사람을 뽑겠다고 했다. 능력이야 주관적인 견해니 검증할 방법이 애매한데 비해 도덕성은 살아온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으니 누가 도덕적인지 쉬이 알 수 있음에도 우리는 도덕이 밥 먹여 주느냐고 무시했다. 어떤 근거로 도덕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라고 믿을까? 어떤 정책이나 목표를 수립할 때 도덕적인 잣대에 따라 누구를 위하고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결정된다고 본다. 따라서 도덕이 밥 먹여준다고 믿어야하고 그런 밥을 먹어야한다.

부자가 되는 건 좋다.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기 위해선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 내야하고, 대량소비를 해야 한다. 환경은 망가지고 그로인해 살기 더 어려워 질 것이다. 문제가 보이는 데도 멈출 수 없다는 게 더 무섭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처럼 지구가 어디에서 멈출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가치와 소중한 덕목을 찾아 행복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덜 쓰고 덜 갖고, 맑은 가난을 즐기는 여유는 지나친 기대일까? 어느 교수의 말처럼 여럿이, 함께, 더불어 라는 연대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부자아빠를 비난하기에 앞서 욕심 때문에 보지 못하고, 무지와 무관심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 우리부터 반성해야 한다.

작은 촌구석에서 이 생각 저 생각에 머리가 무거운 이 순간에 사실은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게 씁쓸할 뿐. 세상은 이렇게 어지러운데 여전히 향기로운 오월의 아카시아가 야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