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기 LA회장의 특강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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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LA회장의 특강을 듣고변상희 석정여고 3년

영월신문 | c3740039@chol.com

승인 2007.10.26 11:46:04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왠지 영어가 좋았다. 알파벳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영어다 싶은 건 모두 따라 읽었을 만큼 그냥 영어가 좋았다. 형편없던 작문실력으로 외국인 친구들과 펜팔을 하고 아버지가 틀어놓으신 비틀즈나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가수들의 음악을 들으며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따라 불렀을 정도였다.

영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면서 나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졌지만 구체적으로 무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영월은 작은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영월에서 자란 내 생각과 시야도 같이 좁았다. 영월에서는 ‘세계’라는 말을 담기가 부담스러웠다. 내 생각이 좁으면 다른 지식을 접할 때에도 받아들이는 문이 좁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부터 나는 영어를 더 열심히 즐기려고 노력했다. 피아노를 배우듯이 신나게 말이다. 영어에 익숙해지며 나는 내 미래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걸 느꼈다.

내가 국제관계나 외교 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영월청소년합창단에서의 활동이었다. 음악이라는 것에 이끌려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설렘을 안고 합창단에 들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서른 명 남짓의 아이들이 학교와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모여 최상규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합창을 배웠다. 그 해 여름에 열린 제 4회 동강 물소리 합창 페스티벌에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합창단이 초청되어 왔는데,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외국인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경복궁타령을 부르는 것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 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이듬해 초, 나는 합창단의 회장이 되었고, 영월어린이합창단의 인솔자 겸 단원으로 미국에 초청공연을 가게 되었다. 합창단과 영월을 홍보할 책자를 손수 만들고 아이들에게 영어노래를 가르칠 때는 지치고 힘들었지만, 미국에 도착해 공연을 하고 그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담으면서 전보다 훨씬 넓어진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한인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우리를 친자식처럼 여겨주시는 마음에 미국에서도 한국을 느낄 수 있었고 한국말을 하려 애쓰는 우리 또래의 한인 아이들이 대견했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내 고등학교 생활을 이끌어줄 지표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많은 지식과 충실한 학교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한창 수시2학기 접수를 할 때 즈음에 합창단 음악감독이신 최 교수님께 연락을 받았다. LA 한인회장이 영월에 직접 와서 강연을 하고 나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분명히 미국에 있을 LA 한인회장이 어떻게 영월에 올까 하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채워졌다. 수요일 저녁, 합창단이 연습하는 여성회관에 잠깐 들러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내가 장학금을 받는 이유는 국제적인 일을 하겠다는 나의 꿈 때문이었다. 얼마나 황송한 일인가! 미국에 있는 우리 동포들의 대표에게 장학금을 받는다는 사실이!

10월 5일, 드디어 그 날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합창단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서 오랜만에 합창공연을 하고 내려와 남문기 LA 한인회장의 강연을 들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의지와 끈기 하나로 대학교에 들어간 이야기부터 달랑 300달러를 들고 미국에 가서 지금은 미국 땅을 사고파는 뉴스타 그룹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 찬 경험을 들었다. 그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고 많은 인재들이 미국에서 공부하여 시장이나 주지사, 더 나아가 미국 대통령이 한인 중에 배출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미국 내 소수민족으로서 받는 보이지 않는 선들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유대인의 정치적 힘이 아주 미미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강연을 들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장학재단을 설립해 한인 청소년들을 격려하고, 한인사회의 커다란 고용창출에 이바지하는 진정한 애국심을.

강연이 끝나고 나는 장학증서와 장학금, 그리고 남문기 회장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미국 땅을 울린 한 마디, 잘 하겠습니다’라는 책을 받았다. 나는 이 장학금이 내 삶에 있어서의 하나의 전환점이라 생각한다. 나는 장점도 단점도 많은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리고 인생의 첫 번째 갈림길에 서있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내 시야를 넓혔고, 굳건한 의지와 그 의지를 행하려는 실천이 있다면 내 잠재력의 폭이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내가 해나갈 일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순간의 어려움을 이겨내면 밝은 미래가 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끝으로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교훈을 주신 남문기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또,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추억을 회상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로 나를 채워준 영월청소년합창단과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신 최상규 음악감독님, 안봉엽 단장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