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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 이승훈 시인강종원 (영월고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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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0.12  13: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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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대한민국시인대회에서 필자(오른쪽)가 이승훈 시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난고 김병연 선생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시선 김삿갓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회 김삿갓 문학상의 수상자로 한양대 교수인 이승훈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자의 대상 시집은 2007년 3월 발간된 ‘이것은 시가 아니다’였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한국 모더니즘 시단을 대표해온 시인 이승훈의 시집의 제목은 이처럼 파격적이다. “시 따로 놀고 인생 따로 노는 위선자들”을 비판하고 “근대 자율성의 미학을 파괴하기 위해” 썼다는 작품들의 내용은 더욱 도발적이다.
   이승훈의 시는 현실에서 마주치는 사물과 현상, 생각의 흐름을 담담하게 옮겨놓았을 뿐 시라면 으레 담기 마련인 사물과 삶의 이면에 대한 성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 같으면서도 시가 아닌 것 같은 시들. 시인은 시집 뒤편에 수록한 장문의 ’시론’ ‘무엇이나 시가 된다’라는 글을 통해 “시와 삶의 경계를 만드는 것은 시인들이 좀 특수하다는, 일반인과 좀 다르다는 선민의식 아니면 차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며 “아름답고 퇴폐적인 자본주의시대에 정신과 영혼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 시인들은 너무 소박하거나 위선자”라고 비판한다.

  심사위원들은 “상자는 자신의 시에 걸맞는 실천적 시론을 끊임없이 추적해온 시인으로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한 가능성으로 출발하여 일정한 세계와 틀을 만들어 내었다. 비대상의 시에서 선(禪)에 이르는 확고한 행보를 보여 준 것은 기존의 시에 안주하지 않았던 김삿갓의 파격, 내지 부정정신에 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특히 수상시집이 보여준 현실이면서 현실이지 않는 불이(不二)의 지향은 우리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김삿갓의 풍자나 해학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일 터이다.”라고 심사평을 밝혔다.

  이승훈 시인은 “김삿갓 시가 보여주는 현실 풍자, 언어 유희, 시적 파격은 당대 지식인 시인들의 한계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새로운 언어 실험이고 그런 점에서 그는 당대의 전위, 모더니스트, 아웃사이더이고 이런 시적 특성은 이 시대에 시를 쓰는 저에게 많은 자극과 용기를 줍니다. 한편 그때나 지금이나 시 따로 놀고 인생 따로 노는 위선적인 시인들이 많은 터에 그는 시가 바로 인생이라는 것, 시인은 영원한 나그네, 떠돌이, 정신의 거지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바람 많고 비 많은 세상사는 게 부끄럽고 죄가 많아 삿갓으로 자신을 가리고 표류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상을 받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안에 사막을 간직한 사람들이 시를 쓰고 예술의 길을 갑니다. 우리는 이 사막을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이승훈 시인은 1960년 고교졸업 후 부친이 영월도립병원장으로 부임하게 되어 영월에 잠시 거주하게 되었는데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영월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어 이번의 ‘김삿갓문학상’ 수상이 남다른 감회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상 시집 ‘이것은 시가 아니다’에 수록된 대표시 소개


잡채밥

학교 연구실에서 20년 매일 잡채밥을 시켜 먹는다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 빗물 묻은 우비를 걸치고 배달 온 청년이 묻는다 다른 건 잘 못 먹어요 청년이 나가면 연구실 낮은 탁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맛없는 잡채밥을 먹는다 학생들이 연구실에 앉아 잡채밥 먹는 걸 보면 실망할지 몰라 문을 잠그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오전 열한시 반 낡은 잠바 걸치고 앉아 고개 숙이고 잡채밥 먹는다 물론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그릇을 신문지에 싸서 연구실 문밖에 내놓는다


기차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군 이상해 언제나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에 서면 기차가 지나갔지 난 4층 연구실 창가에 서서 말한다 제자들이 들른 봄날 저녁 언제나 그래 내가 창가로 가면 기차가 지나갔어 그런데 지금은 왜 지나가지 않을까 ? 그럼 기차가 철길에 정지해 있다가 선생님이 창가로 가면 움직인다는 거야요 ? 한 제자가 묻는다 아니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면 문득 기차가 지나갔어 그런데 오늘은 지나가지 않는군 ! 난 창가에서 돌아와 의자에 앉는다 봄날 저녁


모든 게 잘 되어간다

제자들과 함께 들린 인사동 어느 술집 그 집에도 멸치가 없었다. 동우, 동옥, 경아, 지선 등등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멸치가 없군! 내가 말하자 동옥아 네가 나가 사와! 동우가 시키자 동옥이가 말없이 일어나 나갔지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이상하군 동옥이가 강릉으로 간 거 아니야? 아니 멸치 사러 순천으로 갔나? 내가 말했지 순천은 그의 고향이다 한참 지나 동옥이가 들어온다 동옥아 너 강릉까지 갔다온 거야? 누군가 물었지만 그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멸치를 한 주먹 꺼내놓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선생님 멸치 파는 가게가 없어 한참 헤매다 어느 술집엘 들렀어요 그집엔 멸치가 있다는 거야요 그래서 맥주 한 병과 멸치를 달라고 했죠 맥주만 마시고 돌아올 때 멸치를 주머니에 넣고 왔어요 모두들 하하하 즐겁게 웃던 밤(‘’ 전문)


수상 시집에 수록된 이승훈 시인의 글 ‘무엇이나 시가 된다’ 발췌문

(전략)사는 것도 희극, 말하기도 희극, 시 쓰기도 희극이다.(중략) 본질주의자들은 우리의 삶을 본질/ 현상, 영혼/ 물질, 정신/ 육체 등등으로 나누고 대립시키고 전자를 우위에 둔다. 그러나 이런 사유는 폭력이다. 어째서 본질이 앞서고 현상이 본질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본질이 어디 있는가?(중략) 사는 건 언제나 고달프고 우울하고 한편 우습다. 내가 무슨 본질을 주장하는 시인들과 평론가들을 소박하다고 보는 것은 이런 이유이고 한편 이들은 썩어가는 황홀한 자본주의적 삶을 살면서 시는 순수한 이슬, 고상한 영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그런 점에서 위선적이다. 쓰레기통 속에 살면서 이슬을 노래하는 건 위선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산을 찾는다거나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시인들을 믿지 않는 편이다. 차라리 시를 쓰지 말고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게 좋을 것이다. 이런 정신적 사치는 순수의 허위와 통한다.
시와 일상, 예술과 일상 사이에 벽을 쌓는 것은 부르주아 미학, 이른바 자율성 개념과 관련되지만 도대체 왜 이런 경계가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런 경계 역시 이성의 간교奸巧이고 이런 경계가 현대시의 한계이다. 내가 정신병으로 고생하는 제자의 편지를 그대로 옮기고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표제를 붙여 ‘현대시학’(2005)에 발표한 것은 이런 한계, 시와 일상의 경계에 대한 회의와 부정을 동기로 한다. (중략)
미친 제자의 편지가 문제다. 그는 밤이면 김일성이 그의 집을 폭파하겠다는 전화를 하고 밤마다 지붕 위에 이상한 비행기가 떠 있다는 편지를 보내고 언젠가는 그의 시집이 영국에서 출판하게 되었으니 내가 평론을 써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1980년대 초 이야기다. 이건 시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편지를 인용하고 표절하고 그 글에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표제를 달아 발표했다. 이것은 시가 아니지만 ‘현대시학’에 발표했으므로 시가 된다. 과연 시가 되는가? 이런 글은 휴지통에 버리면 휴지가 되고 일기장에 적으면 일기가 되고 정신과 의사에겐 병력이 되고 화장실에선 화장지가 되고 메모를 하면 메모가 되고 분실하면 분실물이 된다. 시는 어디 있는가?
결국 시가 있는 게 아니라 제도가 있고 문예지, 시지, 시집, 신문 문화부, 출판사 주간, 평론가, 문과 대학 교수, 이론가 등이 모두 근대 문학을 생산한 제도에 속한다. 그러나 제도는 어떤 제도도 그 역사적 역할이 끝나며 사라져야 하고 사라진다. 최근의 우리 문학도 그러니까 우리 근대 문학도 매체 변화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일단 그 역사가 끝났다는 생각이다. 한편 不二 사상과 만나면서 이런 사유는 거의 병적으로 깊어간다. 여름은 깊어가지 않고 사유만 깊어간다. 자아는 자아가 아니고 자아가 아닌 것도 아니다. 나는 나를 모르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시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모두다 시가 되고 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쓴 시는 시가 아니고 시가 아닌 것도 아니다. (중략)
역사는 비약이고 본질은 역사, 시대의 한 양상이다. 초월적 본질은 없다. 시 쓰기는 시 쓰기에 대한 자기비판이다.
40년 넘게 시를 썼지만 나는 시를 쓴 게 아니고 자아를 찾아 헤맨 셈이다. 초기의 자아 찾기는 자아- 언어- 대상의 관계에서 대상을 괄호친 상태로  나타나고 나는 그것을 ‘비대상의 시’라고 부른 바 있다. 물론 말도 많았고 지금도 말이 많은 주장이지만 말이 많은 게 인생이다. 이런 자아 찾기가 중기에 오면서 이른바 자아 소멸로 발전하고 남은 건 언어이고 나는 그때 이른바 ‘언어가 시를 쓴다’는 이상한 (?) 주장을 했다. 그렇던 것이 후기에 오면서 不二 사상과 만나고 이런 만남은 운명이라는 생각이고 마침내 자아 불이로 발전한다. 발전하는가? 모르겠다. 최근에 나는 나의 시가 시로 생각되든 비시로 생각되든 반시로 생각되든 개의치 않는다. 시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구속이고 억압이다. 지도무난 단혐간택 至道無難 但嫌揀擇. 중요한 건 자유이고 해방이다.


* 김삿갓문학상 수상자 이승훈 시인에 대한 글을 정리하여 보내준 강종원 시인은 영월읍 하송리 은행나무 바로 밑에서 성장한 영월출향 시인으로 영월초.중.고(2회) 및 강원대를 졸업하였고, 본상 수상자인 이승훈 시인으로부터 4년간 시창작 지도 및 1992년 ‘현대시학’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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