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잡석이 한 노인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중동면 연상리 속칭 미구골 입구에 혼자 살고 있는 양학원(70)씨.
  양씨는 요즘 돌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지나는 사람과 수석하는 하는 사람들이 집 앞에 두고간 돌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찬찬히 살펴보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돌의 모양을 최대한 살려 그것에 알맞은 산수화 한폭을 돌 위에 그려넣는다. 영락없는 바위, 폭포, 숲이 그 돌에서 나타난다.
 

  양씨는 서울에서 지난해 7월 이곳 미구골로 들어왔다. 친구가 이 근방에서 게르마늄 광산을 하고 있는데 그곳에 놀러왔다가 미구골 계곡이 너무 좋아 빈집에 눌러앉은 것이다. 가족은 모두 서울에 있다. 북한 청진 출신으로 어린시절부터 그림에 타고난 소질이 있다는 주위 사람들 추켜세움에 그냥 평생을 그림그리는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일본강점기 어린시절을 보낸 북한에서는 그림과 조각을 배웠다.
 

  해방되면서 서울에 정착한 양씨는 설악산, 도봉산, 북한산, 한계령 등 국내 산수를 유화로 그렸고 1m 정도의 대리석 속을 깍아내서 조명을 넣고 겉에는 선인이 가야금을 켜는 모습을 새기는 등 조각도 했다.   신격호 롯데사장이 롯데호텔을 새로 지으면서 제일 꼭대기에 집무실과 침실을 별도로 만들었는데 그곳에 천정화도 그렸고 조선호텔 로비 조각작품도 만들었다. 구름 속에 학과 용이 쌍을 이룬 대리석 꽃병도 사우디왕실 중앙홀에 있다.
 

  양씨는 특히 흠집과 문양이 전혀 없는 1.2m 크기의 이태리제 대리석에 조각한 관세음보살상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던 시기의 일화 한토막.
  “박정희 대통령때 비서실장인 박종규가 조각작품을 보고 청와대에 매입해갔었지. 그리고는 ‘이런 뛰어난 재주를 그냥 썩혀서는 안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을 해달라’며 ‘작업실을 마련해겠다’고 약속했는데 10.26이 터지면서 물거품이 되기도 했지. 그땐 작품하는 것이 좋았을 뿐 돈을 몰랐어”
 

  한동안 외국에 나가 있다가 37살에 들어왔고 그해에 학교에 근무하면서 제자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한 후에도 돈을 몰랐고 그저 작품을 만들고 작품값을 받으면 집에 갖다주는 것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그렇게 평생을 서울에서 지내다가 아이들이 출가해 자리를 잡았으면서 혼자 자유롭게 작업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이곳에 내려왔다.
 

  양씨는 처음 미구골에서 예전에 하던 유화를 그렸다. 그러던 어느날 수석하는 사람이 쓸모없는 돌이라며 집에 두고간 돌을 보다가 돌의 모양에서 산수가 떠올라 그대로 그림을 그렸던 것이 계기가 되어 돌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돌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서 그것에 맞춰 그림을 그린다. 돌이 가진 모양 질감을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다.” 이러한 돌그림을 양씨는 터치 내추럴 스톤 아트(줄여서 터치 스톤)이라고 부른다.
 

  “캔버스에 그리는 것보다 더 친근하게 우리 소재를 사용하고 싶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런 생각에 예전에도 양씨는 기와장, 접시, 키(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미구골에 정착한 후의 일이다.
  “돌만이 가진 질감이 있다. 그것은 그림으로는 그릴 수 없다. 어떤 돌이든 그 자체가 가진 모양과 문양, 질감 등이 있는데 그것을 최대한 살려서 그림을 구상하고 그린다. 산수화를 좋아하다보니 대부분 산수화를 그린다.”
 

  실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은 돌의 질을 그대로 살리면서 구상하는데 소요된다. 돌은 직접 개울이나 강에서 가져오기도 하지만 수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갖다 준다고 한다.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외롭지 않을까? “혼자와 있는 것도 적응하면 살 수 있다. 어떨 때는 1주일동안 한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이 편하다. 좋은 것만 보고 살고 있다. 다만 겨울에 물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양씨는 돌그림으로만 개인전을 하고 싶어 한다. 그 방식을 물었더니 “관광지에서 비싼 그림은 팔리지 않는다. 돌그림은 10만원 미만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여건이 갖춰지면 한달에 100개 정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을 영월의 특산물로 만들고 싶다. 영월만 있는 독특한 기념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회라기보다는 전시공간과 작업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양씨는 “지금상태로도 연말까지 몇 백개 정도는 만들 수 있다. 사람이 많이 오는 곳에 전시관과 작업장을 마련해 직접 작업하고 싶다. 그러면 밥은 먹고 친구가 오면 막걸리도 한잔하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박한 꿈을 밝혔다.<최홍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