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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대상으로서의 단종과 열린 미래
심승구 한국체육대학교 한국사 교수  |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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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4  1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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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1457년(세조 3)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이 승하한 지 560주년이며, 1967년에 시작한 단종제 50주년이자 2007년 단종문화제에서 단종국장을 선보인 지 1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강원도 영월군은 지난 50년간 단종문화제를 지역의 문화적 표상으로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단종의 제향에 이어 국장을 추진한 배경에는 원통하게 귀양 와서 죽어 국장을 치르지 못한 어린 단종의 한을 지역민이 풀어주고 위로한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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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같은 노력의 결과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 왕릉(장릉)에서 거행하는 단종제례는 2011년에 강원도 무형문화재 22호로 지정되었다. 2007년에 처음 등장한 단종국장의 재현 행사는 단종문화제의 백미로 꼽히며, ‘충절의 고장’ 영월군을 대표하는 지역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2018년 평창 올림픽 행사기간에 단종국장이 강원도를 대표하는 문화행사의 하나로 선정된 것은 그 같은 현실을 잘 뒷받침해 준다.

  하지만, 단종국장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전통’이다. 이제 막 출발 단계에 서 있는 단종국장도 현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과거의 이미지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단종국장은 지역경제의 활성화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관광의 대상으로 주목되었고 2014년 이후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추진되고 있다. 폐광지역의 극복이라는 현실 앞에 영월의 유·무형 문화가 관광자원으로 해석되고 그 가치가 지역경제를 책임질 글로벌한 관광상품으로 재맥락화 된 것이다.
  단종국장에 대해서는 지난 10년간 역사적 허구성과 재현행사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어 왔다.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을 갖춘 세계유산 장릉에서 과거에 없던 국장 행사를 거행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이다. 단종을 추모한다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보다 진정성 있는 접근 방법은 없는가가 본질적인 물음이다. 또한 단종국장을 세계화한다는 명분 아래 인류무형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목표가 현실적으로 적절하고 또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해 보인다.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단종문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유산인 장릉에서 지내는 제향과 국장이라고 할 수 있다. 1967년에 시작된 단종제례는 숙종대 이후 정례화 되어온 제향을 보전·계승하는 유산적 가치로 인해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07년부터는 장릉과 주변지역에서 단종국장의 행렬과 의식 절차 일부를 재현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비운의 왕 어린 단종과 충신을 대상으로 다양한 추모행사를 왕릉에서 진행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지역축제와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다. 단종국장은 2009년 장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그 곳에서 치러지는 단종제례가 2011년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자, 지역민에게 축제를 넘어 세계화라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세계화의 방향은 인류무형 문화유산의 등재 추진과 평창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의 주목을 끈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관광 효과를 유발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영월군에서는 단종국장을 세계화시키기 위한 노력에 집중한 탓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추진이 가능하다는 성급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인류무형유산은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전통문화인 동시에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이다. 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와 집단이 자신들의 환경, 자연, 역사의 상호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재창조해 온 관습, 표현, 지식 및 기술, 공연예술, 문화적 표현을 아우른다.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는 집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통해 생활 속에서 주로 구전에 의해 전승되어온 것이다. 과거의 사실이 아닌 최근 만들어진 단종국장은 아무리 봐도 현 시점에서 유네스코 등재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종제향이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는 이 대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에게 영월이란 진정 무엇일까? 그리운 기억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영월은 비운의 단종과 죽음을 무릅쓰고 절의를 지킨 이들의 맑은 넋이 곳곳에 서려있는 기억의 터이다. 그래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어렵다. 기억의 대상으로서의 열린 과거가 바로 영월이 우리에게 주는 현재적 의미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과학적 인식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기억의 대상이다. 기억의 대상이기에 역사는 흘러가 버린 완결된 어떤 것이 아니라 늘 열려있는 미완의 것이다. 지나간 과거가 완결되지 않고 열려있다는 것은 그것이 구제될 가능성과 필요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단종과 사육신 등이 숙종대 이후 복권되어 제자리를 찾은 뒤, 최근에 제향을 넘어 국장까지 재현되는 현실은 열린 과거와 함께 역사의 구원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단종제향을 통해 되새겨야 할 점은 겉으로 드러난 유교의식의 절차나 내용에 있기 보다는 그 속에 담긴 가치와 의미에 있다. 역사 속의 단종의 죽음과 삼백여명의 충절을 추모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의리 정신과 실천이 오늘날에도, 아니 오늘날에 대해 지니는 유효성과 현재성을 찾는데 있다. 한나 아렌트는“전체적인 국가가 사라진다고 해서 전체주의적인 권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설파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적법하게 행해지는 시민의 벌거벗은 삶에 대한 감시, 폭력, 억압의 문제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부당한 권력으로 인해 주변에 억울하고 원통한 삶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이다.
  단종의 원통한 죽음과 그를 지켜내려던 수많은 의인들의 절개는 영월지역과 지역민에게 소중하고도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겨 주었다. 우리는 인식과 실천, 역사와 현재 사이의 긴장을 해체해 버린 채,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박제화된 지식으로 환원해서는 곤란하다. 지금부터 250년전 연암 박지원은 한 살 아래 친동생 같던 이희천이 불온서적 소지 혐의로 처형되자 “나라 사랑이란 임금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아닌 힘없는 백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이 같은 연암의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충절(忠節)에 대한 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문화유산이라는 전승된 재화는 풍요롭고 다채롭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환등기로 작용하기도 하고, 권력에 의해 치장되어 체제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기도한다. 영월의 유·무형 문화유산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유명 정치인들이 충절의 고장인 영월 단종제를 자주 찾았던 이유가 이와 무관치 않다.
  전승된 문화유산이란 궁극적으로 현재를 사는 이들의 삶에 유용한 지침을 주는 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문화를 향유하는 주체의 문제가 제기된다. 문화유산이 지배 권력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그때그때 지배 권력의 전리품으로 기능해 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유산을 지배 권력과의 관계에서 풀어내어 다수 일반 사람에게 돌려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문화유산이 추상적인 국민 전체가 아니라 힘없고 소외받은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향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종과 충신들을 기리는 단종문화제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무형자산이다. 그곳에 열린 미래도시 영월이 있다.

  이 글은 단종국장 재현행사 10년을 맞이하면서 그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갖는 현대적 의미와 한계를 점검하며 향후 과제와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단종국장 재현행사가 지역민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지역공동체를 위한 지속가능한 제축(祭祝)콘텐츠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심승구 교수가 지난 10월 18일 열린 제3차 단종국장 세계화를 위한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 중 일부를 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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